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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대림 제4주일인 오늘의 독서와 복음말씀에서 하느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두 사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1독서에 등장하는 아하즈 임금과 복음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곧 맞이하게 될 주님의 성탄을 앞두고,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이 두 인물의 모습을 통해 돌아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유대 왕국의 임금인 아하즈(재위 B.C732-716)는 하느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더 임금으로 제시됩니다.(2열왕 16,7; 2역대 28,1-2 참조) 주님께 표징을 청하라는 예언자의 전언(傳言)에 아하즈는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이사 7,12)라고 대답합니다. 얼핏 보기에 이는 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자의 모습으로 보입니다만, 사실 아하즈는 이사야의 첫 번째 경고(이사 7,1-9)를 받아들이고 싶은 뜻이 전혀 없음을 피력한 것입니다. 아하즈는 실제로 시리아-북이스라엘 왕국의 연합세력에 맞서 힘겨운 세력다툼을 하고 있었는데, 이 위기를 아시리아의 힘을 빌려 해결하고자 합니다. 외교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풀어나가려는 인간적인 지혜를 발휘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시리아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굴종(屈從)하며 야훼신앙의 상징인 성전을 이방 종교의 양식으로 개조하는 등 하느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스라엘의 질서를 흩트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따라서 오늘 독서의 장면은 이스라엘을 굳건하게 지켜줄 튼튼한 바위이신 하느님만을 신뢰하라는 예언자의 권고를 무시하는 아하즈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혜를 발휘한답시고 교묘하게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인간의 표상이 드러납니다.

 

  이에 반해 오늘 복음에서 요셉은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마태 1,20)는 천사의 알림을 듣고서 이 말씀을 “명령”(마태 1,24)으로 받아들입니다. 명령(命令), 곧 받아들이고 따라야 할 메시지로 인식했다는 것은 요셉이 해야 할 선택에 있어 주도권이 하느님께 있음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바로 이 지점이 요셉을 두고 “의로운 사람”(마태 1,19)이라고 일컫는 이유일 듯 합니다. 단순히 사람을 해치거나 복수하지 않는 온유함이나 신중함만으로 그를 의롭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선택방식에 있어 하느님의 뜻을 우선으로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요셉을 ‘의로운 사람’으로 선언하는 근거인 것입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과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품은 요셉 성인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큰 계획을 이루십니다.

 

  위기가 닥치든 호사(好事)가 이어지든, 우리는 그 안에서 많은 것들을 선택하고 결정하기 마련입니다. 그때마다 크고 작은 유혹이 있을 텐데, 그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우리를 신앙인으로 남아있게 합니다. 또한 그것이 성탄을 목전(目前)에 둔 지금 우리가 다시금 상기해야 할 원칙이고, 주님을 맞아들이기 위해 준비해야 할 의로움임을 되새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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