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은 ‘소문(所聞)’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소문 말입니다. 소문을 통해 쉽사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예수님께서 유명세를 탔다는 뜻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복음이 전하고 있는 주된 내용은 소문에 관한 헤로데의 반응입니다.
그는 소문을 듣고서 불안해 합니다. 또한 그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 합니다.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 보고 싶어 한 것은 자신과는 다른 예수님의 메시지, 자신과 구별되는 권위와 힘, 자신과는 다른 영역에서 넘볼 수 없는 인기와 유명세 때문입니다. 이는 세례자 요한마저 죽인 헤로데가 새로운 가르침을 얻어 새롭게 거듭나고자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헤로데의 호기심은 권력에 대한 애착, 자신의 과오가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는 데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일 뿐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에 관한 다양한 소문을 듣고 불안해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헤로데는 이 소문을 듣고 당황했다고 합니다. ‘당황한다’는 것은 죄를 뉘우치거나 인정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가톨릭 교회도 이천 여년 동안, 우리 각자도 각자의 시간 속에서 이런 소문들레 휘둘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소위 망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이유는, 교회가 과오도 흠결도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잘못을, 심지어 뒤늦게라도 과오를 인정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고 그분의 심판을 기다리는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도 소위 ‘소문’이라 할 만한 이야기와 정보에 노출되어 있고, 때로는 그 소문에 휘둘리는 바람에 자신의 치부(恥部)를 들여다보거나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 예수님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래서 내 치부가 드러나거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까봐 저어하는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분의 자비를 믿는 마음이 더욱 크기에 이 모든 것이 유혹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마주하기를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그분의 자녀다운 담담함과 기쁨으로 하느님을 찾고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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