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끔 농담을 할 때가 있는데, 평소 워낙 무뚝뚝한 모습이라 그런지 교우들께서 제 말이 농담인줄 모르고 당황하시는 상황이 가끔 생깁니다. 그런데 제가 가끔 농담으로 써먹는 표현 가운데 한 가지가 “나는 신부 말 안 듣는 신자를 제일 싫어해요”입니다. 주로 서로 밥을 사겠다고 실랑이를 하는데 제가 꼭 밥을 사야겠다고 생각이 든다던가 할 때 진짜 정색을 하면서 하는 말인지라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는 농담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제가 밥은 꼭 사고 싶으니까요.
위와 같은 말이 농담이 될 수 있으려면, 위압감을 주지 않고 지나칠 수 있으려면 제 말을 따라주지 않는 신자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겠죠. 저는 스스로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저런 말을 농담이랍시고 합니다만, 혹여라도 이런 판단이 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기를 바라는 조마조마한 마음도 조금은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두 아들에게 영광을 약속해달라는 한 어머니의 말을 들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27)
자신의 몸을 낮춰 남보다 낮아지는 것은 어찌보면 쉽습니다. 나 혼자만 잘 다스리면 이루어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정한 ‘섬김’은 자신을 낮추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상대방을 귀하게 여기고 높이 받드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기를 조심하며, 애쓴 결과의 공로(功勞)를 상대방에게 돌리는 등 겸양(謙讓)을 비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理解)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눈감아줄 수는 있어도 동의하기에는 어려운 상대방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존중할 때라야 비로소 상대방을 높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낮추는 ‘참된 섬김’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회생활 속에 익혀왔듯 자신의 위치를 가늠하고 그에 걸맞게 몸을 낮추는 것은 상대방을 위한 겸손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 자신이 오해를 사거나 불이익을 받거나 지탄을 당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조심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에서 나오는 ‘섬김’은 내가 섬김의 표양을 보임으로써 상대방에게 참된 섬김의 자세를 본받거나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나로 인하여 상대방이 존중과 배려 속에서 감사함을 느끼게 해주기 위한 자세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죠.
이 과정이 쉬운 것이었다면 예수님께서 일부러 제자들을 불러놓고 따로 말씀하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쉽지 않음’이 우리가 이번 사순시기에 묵상하고 짊어져야 할 십자가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지 않을지를 잘 살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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