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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오늘은 전례력으로 한해의 마지막 주간을 시작하는 날이며, 세상 끝날의 심판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 만물의 임금으로 드러나실 하느님의 주권(主權)'을 기념하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전제군주 시대를 살고 있지 않는 우리에게 있어, '왕의 권한'이라는 것은 '주인 의식'이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가장 근접한 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왕권(王權)과 '주인(主人)의식'이 일맥상통하는가를 생각해보면, 임금은 그 나라의 주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죽했으면 근대 왕조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임금을 두고 '나랏님'이라고 했을까요.

  그 모습이 어떠하든 무엇인가의 주인은 자기것에 대한 책임감이 있을 것입니다. 소위 ‘주인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주인이 아닌 사람은, 자기 것이 아니므로 그만한 책임감을 가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 권리와 책임을 지닌 사람으로서 더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고, 어려운 일을 마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부터 북경이나 중국에서의 다른 공동체에서 지낼 때에,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모습 가운데 하나는 신앙생활이나 공동체생활을 '해외에서의 내 삶의 옵션' 혹은 '장식품' 정도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들입니다. 달리 말해서 나 자신이 이 지역교회라는 공동체의 주인이라는 의식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모습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신앙생활 가운데의 경험이라든가, 현지 공동체에서 겪는 우여곡절, 심지어 개인적으로 극복하기 쉽지 않은 현실적 여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유 때문에 주인의식을 지닌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고자 하여도 그렇게 하기 쉽지 않은 경우들도 상당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경험, 선입견, 자의적 판단을 절대화시켜 마치 공동체의 상황이나 봉사직들을 '적어도 지금은 내 문제는 아니다'라는 식으로 선을 그어놓고 바라보는 방관자의 모습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못하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구원문제를 남의 문제로 보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강건너 불구경하는 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당신의 문제, 당신의 과업으로 보셨고,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서까지도 사람들을 구원하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영광을 통해 그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임금이자 주인다운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이에 비추어볼 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다른 사람의 구원의 문제, 나와 한데 어우러져 있는 이 사람들의 구원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봅니까? 나를 비롯한 이웃들의 구원, 그들이 신앙 안에서 새로운 기쁨과 보람을 맛볼 수 있도록 돕고 이끌어주는 일에 얼마나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까? 교회가 전교하여 세상을 복음화시켜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이 나와 얼마나 상관이 있으며, 내가 책임감을 가져야 할 사명이라 여겨집니까?

  주인은 손님과는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신경쓰며, 그들이 하지 않는 일도 마땅히 해야 할 자신의 몫으로 여기는 남다른 관심, 애정, 시각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러한 주인의식이 없이는 스스로를 낮추고 남을 섬기는 봉사도 어려워질 수 있음을 오늘 다시 한 번 기억했으면 합니다. 아울러 내가 마음만큼 주인의식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대신해주고 있는 공동체의 적잖은 형제자매들에게 감사의 정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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