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교우들과 식사자리에 함께하게 되면 보통 식사 전,후 기도를 제가 주도해서 하게 되는데요. 제가 말이 좀 많이 빠르죠. 그래서 식사 전 기도를 빨리 해서 어떤 분들은 놀라시더라구요. 그럴 때에 제가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는 “시장한 사람들을 음식 앞에 앉혀 두고 식사 전 기도를 길게 하는 것은 죄짓는 것이다”입니다. 주어진 음식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허락해주신 축복임을 기억하는 정신이 중요할 뿐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게 눈 감추듯’ 기도하는 것이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을 잇는 근동(近東)지역의 종교적 문화는 자기네들이 불러낼 수 있는 신(神)은 죄다 불러서 소환시켜놓고 기도를 시작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요구사항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그런 요구사항이 필요한 이유도 세세히 열거하는 방식이 흔했다고 합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물론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에도 이는 마찬가지였고요. 그래서 이런 말씀을 하셨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빈말’이라는 것이 말을 장황하게 주저리주저리 한다는 뜻만은 아닐 것입니다. 실제 내용이 없거나, 기도하는 가운데에 마음과 정성이 담겨있지 않다면 그 역시도 빈말이 되겠지요. 말에 힘과 진정성이 부족하고 실천하지 않는 것도 빈말일 것입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의 말씀은 힘과 권위가 충만했고, 그분의 말씀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빈말이 아니게 되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에 정성스레 지키고자 기억해야 할 내용, 그리고 생활 중에서 끊임없이 충실하고자 노력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 이런 것임을 가르쳐주시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기도이지만 또한 주님께서 몸소 가르쳐주신 단 하나의 기도이기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소중한 이 ‘주님의 기도’가 언제 바치게 되더라도 빈말이 되지 않도록 힘써보는 것이 또한 이번 사순시기를 어떻게 보낼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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