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정말 오래간만에 서점을 방문했습니다. 요즘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주제, 대상이 무엇인지를 보려면 서점을 찾아보는 것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랬더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동산’, ‘금융’ 그리고 ‘성공’에 관한 책이 가장 많다는 것이었네요. 부동산과 금융이야 요즘 한국사회의 세태, 가계경제의 현주소를 반영하는 키워드일 것이어서 특별하다 느껴지지는 않았네요. 반면에 ‘성공’이라는 키워드는 21세기 초반에 가장 많이 등장한 관심사였다 싶은데요. 이번에 눈에 띄는 것은 ‘성공보다는 성장’이라는 내용을 다루는 약간의 서적들이었습니다. 성공(成功) 곧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그렇지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주된 세태(世態)였다면, 당장 그 목표를 이루어내지 못했더라도 성장(成長)하고 있다면 곧 성공(成功)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자녀들의 성공적 미래를 염원하는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온갖 정성을 쏟았는데 정작 자녀들과 소원(疏遠)해지는 경우나 심지어 자녀들의 원망을 듣고서 힘겨워하는 부모들도 봅니다. 자녀들에게 진정으로 믿고 의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잘 알려주려고 하지만 정작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것에 의지하거나 심취하는 모습에 불안해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잘 개척해 나가도록 채찍질하는 부모의 열성을 되려 원망하거나 반감을 가지는 자녀들로 인해 당혹스러워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부모가 자녀들의 버팀목, 안식처, 지붕과 그늘이 되어주고자 하는 것도 참 어려워 보이는데, 어쩌면 부모 세대조차도 진정으로 훌륭한 삶,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가장 믿고 의지할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알려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말라’면서 사회성을 교육시키고, 삶에 있어 중요한 것이 많다고 하면서 ‘돈에 의지하여 사는 법’을 가르치는 이율배반적 모습까지도 보게 되죠.
성경은 절대 특정 사람에게나 돈, 명예, 등의 세상 것에 의지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독서의 호세아서 말씀에서도 그런 것들은 다 우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자신을 가리켜 부모에게서까지 버림받은 고아(孤兒)라고 일컫습니다. 고아는 세상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는 존재를 뜻하니까요. 그래서 실제로 성경에서 ‘고아’란 오로지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어떤 것에도 믿음을 줄 곳이 없는 이들을 말하며(호세 14,4 참조), 실제로 의탁할 곳 없는 어린 고아(孤兒)는 가장 우선적으로 돌보아야 할 약자(弱者)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내 삶을 위해 의지할 수 있다 싶은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일까요. 흔한 농담 가운데 ‘힘든 일이 생길 때만 성당에 나온다’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부르셔도 대답이 없으니까 꼭 당신 곁으로 불러야겠다 싶은 때에 힘든 일을 주신다’고도 말합니다. 기도하거나 성당에 나오는 것도 일순간 혹은 일정기간 동안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면 신앙은 부수적인 것이며 바꾸거나 버릴 수 있는 것이겠죠. 우리는 이런 신앙을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믿음은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지만, 다른 것을 믿으면 주님께 대한 믿음은 약해집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부유하게 사는 것이나 명예를 획득하는 것을 바라시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 당신께 의지할 수 있는 고아가 되어 당신께 돌아오기만을 바라십니다. 이 역설적인 표현이 ‘의지할 분은 하느님 뿐입니다.’ ‘하느님만이 영원히 변치 않으시며 저를 사랑하십니다’라는 고백과 같음을 잘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만큼 하느님을 믿고 그분께만 의지하고자 할 때,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차근차근 얻어가며 ‘성장하고 있는’ 신앙인이라면 이미 우리는 성공한 사람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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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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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