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야에서도 전문가나 책임자가 되기까지 그러하듯, 신부가 되기 위해서도 일정 수준의 교육과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면 신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능력(혹은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학식(學識)이나 성덕(聖德), 신심(信心) 등도 중요하지만 신부들 사이에서는 ‘실천적 판단력’이라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보시기에 (다른 사람을 거론할 필요 없이) 제가 실천적 판단력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교회의 일을 하기 위해 더 중요하고 시급한 능력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이미 오래 전, 한국의 어느 본당에 주임신부님께서 새로 오셨습니다. 이 신부님은 성모신심이 뛰어난 분이어서 스스로도 기도를 엄청나게 바치고 또 교우들에게도 소위 ‘물량공세’라고 할 만큼 기도를 많이 시키고 권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특정 신심행위나 활동에 지나치게 편중된다는 비판도 받곤 했습니다.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라는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죠.
그런데 이 무렵에 본당들은 물론 인근의 개신교회들에까지도 교우들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이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교회에 새로 와서는 봉사도 매우 열심히 하고, 공동체의 궂은 일에도 헌신적이며 심지어 봉헌이나 기부도 많이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환심을 사두고는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돈을 빌리기 시작합니다. 의심스럽다면 사람들이 서로간에 확인해 보기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도록 미리 작업을 해 둔 것이죠. 그렇게 하여 이 신부님이 계시던 본당에서도 알려진 것만 수억 원에 달하는 피해액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때에 사람들이 알게 된 또 한 가지 사실은 본당 건물 가운데 일부를 재건축하기 위해 공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 사기꾼이 본당 신부님께도 접촉을 했다는 것입니다. 본당 사정도 어려운데 자기가 잘 아는 업자를 섭외해서 공사대금을 절감할 수 있도록 주선해 보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우려나 예상과는 달리 본당건축기금은 별 탈이 없었습니다. 이유인즉슨 본당 신부님이 사기꾼의 말에 매우 원칙적인 답변을 했다는 것입니다. 본당의 큰 사업은 공동체와 교구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공정하게 경쟁입찰을 통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사람들이 신부님을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달라졌다고도 들었습니다. 불평이 많이 줄어들었다나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고 별 일 아닌 듯한 결정이지만, 사람이 이런 저런 생각과 욕심에 그 당연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중심을 잡고 우선순위를 잘 헤아리는 것이 ‘실천적 판단력’이 아닐까 싶은데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이방인들이 사는 곳이나 사마리아 지방에 가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가라고 하십니다. 이방인들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구원받을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가까운 곳, 더 우선적이고 시급하게 구원되어야 할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무슨 일을 할 때에나 지금 나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 가장 시급한 것, 지금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헤아리며, 필요한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잘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 이런 지혜로운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함을 가르치신다고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이 지혜로움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드러나겠으나, 제가 위에서 언급한 ‘실천적 판단력’이 신앙인 개인에게나 공동체에 필요한 지혜로움이라면 우리 스스로도 함양해 나가기를 포기하거나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겠지요. 이 점을 복음의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곱씹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