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징(Symbol)이란 일종의 매개체(媒介體)로서 그 자체보다는 드러내고자 하는 실체(實體)를 주목하거나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줍니다. 언어, 각종 신호체계, 상징물 등과 같이 사람은 많은 표징을 통해 추상적(抽象的)이거나 초월적(超越的)인 실체를 인지합니다. 다만 실체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표징은 그 자체로 별 의미와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유대인들을 두고서 예수님께서 하신 오늘 복음의 말씀도 이런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1,29)
사람은 자신이 관심을 가진 것만 보이는 듯한 인식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애써 찾는 물건 외에는 이전에 애타게 찾다가 결국 못 찾은 물건이 보여도 그냥 지나치는 제 습관도 그러하고, 엄청 배가 고파서 먹고 싶은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거나 생리현상으로 인해 급하게 화장실을 찾는다면 그 주변에 있는 수많은 가게나 장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관심을 가지면 보이는 것들이, 단지 관심이 없으면 보이지 않거나 쉽게 놓쳐 버리기 일쑤입니다.
우리가 사순시기를 지내는 의미도, 그동안 지키고자 노력할 재계(齋戒)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이런 관습이나 형식을 통해, 스스로 선택하는 여러 가지 고달픔 속에 담아야 할 사랑과 희생, 양보의 정신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계신 예수님의 모습에서 그 사랑을 보지 못한다면, 사순시기의 재계는 왜 지켜야 하는지 그 해답을 달라고 계속 의문을 제기하거나 불평 속에 마지못해 지키는 억지스러운 계명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실제로 ‘세상 모든 이들의 죄를 용서하는’ 구원을 이루어냈듯이, 사순시기의 재계를 지키는 우리의 수고와 희생이 자신과 주변을 하느님의 사랑에 눈뜨게 해주는 새로운 ‘요나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음을 믿으며 그것에 관심을 두고서 사순시기를 지낼 때, 우리의 모습이 ‘참된 시대의 표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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