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탈렌트의 비유'로 알려진 마태오복음 25장 내용이 루카복음에서 다시 등장했네요. 오늘 복음에서 칭찬받지 못하는 종은 주인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루카 19,21)
죄악이 가져오는 폐해 중 하나는 두려움입니다. 망설이게 하고, 주저하게 하고, 회피하게 하고, 외면하게 하죠. 실패를 두려워하면 성공할 수 없고 상처받을 것이 두려우면 사랑할 수 없다고 하듯, 구원을 위한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스럽다 여기면 엄두가 나지 않으며, '그 때와 시각을 모르는 하느님의 심판'을 무서운 것으로만 여기면 "현재를 구원의 기회로" 여기는 마음이 부족한 탓에 '지금 하느님의 계명 속에 사는 이 순간'이 그리 행복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주인이 돌아왔을 때 셈을 하는 것'을 들여다보면, 주인은 애초에 벌이를 하라고만 했지, 얼마를 벌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삶은 끊임없이 벌이를 하는 현장입니다.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서 무엇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요? 좀 더 발품도 팔고, 생각도 해보고, 누군가를 만나보거나 물건을 확인해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처럼 우리가 벌어들이고 얻어내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 하느님의 사랑, 가족을 비롯한 이웃의 사랑, 그로부터 얻는 삶의 기쁨과 보람 등......
삶이 고달프고 힘이 들어도, 벌어야 할 것, 벌어들이고 싶은 것, 벌이를 해야 하는 동기부여 등이 안되면 힘겨움이 두려움으로 바뀌어버리는 듯 합니다.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을 때 심지어 스스로 삶을 저버리는 등의 모습도 보게 되죠.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에 두려움을 떨쳐내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더러 얼마를 벌어오라, 반드시 성공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19,13)고만 하십니다.
집을 장만하든, 자녀 뒷바라지를 생각해서든, ‘돈 좀 벌어보자’라고 맘먹으면 어금니 꽉 깨물고 땀흘리며 산다. 실패를 생각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두렵고 조바심이 나지만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할 뿐’이죠. 신앙생활도 그런 마음과 자세로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자신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오늘도 무언가를 벌어들이기 위한 하루를 잘 시작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