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어느 연구가가 이혼한 부부들을 대상으로 이혼의 이유를 물었더니, 주로 성격차이, 경제적 문제, 가족들간의 갈등, 배우자의 외도, 폭력, 술, 도박 등과 같은 대답이 다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연구와 관찰을 통해, 정작 부부가 헤어지는 것이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혼하는 진짜 이유는 ‘다툼의 내용’이 아닌, ‘다툼의 방식’ 때문이더라는 것입니다. 이혼하는 대부분의 부부들은 ‘당신 도대체 뭐야?’, ‘너는 뭐가 잘났는데?’, ‘주제 파악 좀 해’, ‘너나 잘해’ 와 같은 말처럼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말, 상대방과 멀어지는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충분히 이혼을 고민할 만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가는 부부들은 서로간의 관심, 공감, 배려, 경청의 대화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믿음’을 근본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생활 중에 가장 많은 때에 강조되는 것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이는 하느님의 법이 제시하는 “믿음의 방식”이 ‘사랑’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나 의지적으로 의심하지 않고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넘어,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법을 따르는 태도가 우리 믿음의 근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율법은 이미 상당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규정체계가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수많은 계명 가운데 으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를 꼽는 것은 어려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무언가를 최우선으로 꼽자면 다른 계명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비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율법교사의 시험하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씀하십니다 :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39)
모든 계명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키고자 할 때에 그 참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방식’이 계명에 담겨있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하느님이나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계명을 마주하면,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은 어떤 계명을 지켜내는 데에도 더욱 슬기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툼과 갈등, 미움 등을 떠올려보면 많은 경우에는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찾기도 하는데, 우리는 이런 때에라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를 더 먼저 찾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가장 큰 계명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될 테니 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