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시작은 오순절, 즉 성령의 강림사건에서부터라고 말합니다. 성령께서 오심으로써 그 인도에 따라 교회가 자라나고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그 이전에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성령께서는 그전에도 계셨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드러내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시기로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해놓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구원계획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계획에 어긋나보이는 성령의 활동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강림사건 이전에 사람들과 함께하시고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시어 좋은 일을 이루시는 성령의 활동이 성경에서 증언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 그리고 오늘 복음에 나오는 시메온의 경우도 있습니다.
분명히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확실하지만, 하느님은 어느 특정한 방식에만 얽매이는 분이 아니십니다. 죽기 전에 메시아를 두눈으로 보게 되리라는 믿음으로 끝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시메온은 무기력하고 나약한 늙은이에 불과해 보이지만, 하느님은 힘있고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메시아를 알아보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무력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통해서도 좋은 일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는 식의 생각은 자칫 하느님께서 우리를 좋은 것에로 인도하시려는 뜻을 잘못 이해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기에, 그 뜻을 알아듣기 위한 준비에 불과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준비된 우리의 마음, 우리의 노력을 통해서만 좋은 일을 이루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 저는 너무 힘없고 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는 우리 안에서도 좋은 일을 이루실 수 있으십니다. 예언자 시메온은 바로 이런 믿음으로 살아간 사람이며, 그와 함께계신 하느님의 힘, 성령께서는 과연 그에게 좋은 일을 이루어주십니다.
우리도 내가 잘하고,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하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이 아님을 깨닫고, 무기력하고 약한 우리의 모습까지도 하느님께서 좋은 일을 이루시는 데에 쓰실 수 있도록 봉헌하면서 살아갑시다. 하느님께 불가능이란 없고, 하느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를 구원에로 이끄시고자 좋은 일을 이루어주시는 분임을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