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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

  5월도 중순에 이른 지금, 날씨는 벌써 초여름에 가까웠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매, 더운 날을 보냈던 기억들 가운데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 동교민항 성당에 냉방장치가 없어서, 더운 날씨 속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미사에 참례하는 교우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기억납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만, 이 더위 중에 미사를 봉헌하며 제게는 한 가지 작은 고집이 있었습니다. 미사중에 흐르는 땀을 일부러 닦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좀 고약한 고집이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더위로 인해 미사참례에 집중하기 어려워하고 불편해하는 교우들이 땀을 뻘뻘 흘리는 저로 인해서 좀 더 불편함을 느끼기를 바래서였습니다. 그래도 많은 교우들이 제의라도 한 겹 더 입고 있는 신부가 더 더울 것이라고 안쓰럽게 바라봐주시는데, 그러니 이왕 더운 김에 미사를 좀 더 정성스럽게 봉헌하고자 집중하고자 노력하면 이것이 미사에 참례하는 우리들의 본연의 마음,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정성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무더운 여름날에 다시 동교민항 성당에서 더위와 씨름하며 미사를 봉헌하게 될 텐데, 그때에도 각자의 수고와 희생을 통해 정성스레 미사를 봉헌하며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의 열기로 ‘이열치열(以熱治熱)’ 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소하면서도 고약한 고집을 부리는 또다른 이유는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모르실 리 없습니다만, 오히려 사랑을 표현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본인 스스로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 사랑의 정도와 상태를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사랑은 드러내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알려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

사랑은 혼자 하는 행위가 아니므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의 사랑을 내보이며 친교를 이루는 가운데 일치를 이루어 갑니다. 이 친교와 일치는 서로가 주고받는 사랑이 드러날 때에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상대방에게 알 수 있을 만한 어떤 방법으로 전해지지 않는다면, 원하는 것이 아닌 좋은 것을 주려 한다거나 상대방이 사랑받기 원하는 때를 놓치는 등 무언가 어긋나는 모습을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로 대표되는 교회공동체와의 온전한 사랑의 친교와 일치를 바라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십자가의 모범을 통해 먼저 보여주셨고,이제 제자들이 사랑을 드러낼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다.”(요한 14,21)

 

  그리스도교 격언 가운데 ‘In regula Deus est’(규칙 안에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말이 있듯이 계명을 지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여 우리 삶 가운데 함께하시도록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계명은 사랑을 구실로 삼아 누군가를 옭아매는 속박의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계명은 서로가 품고 있는 사랑을 드러내 주고 그것을 표현하고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계명을 짐스럽게 여긴다면, 그 계명이 요구되는 어떤 상황(특히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상황이나 사람)에서 우리가 드러내어야 할 사랑의 마음과 정신이 부족하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그 존재조차 까맣게 잊어버려 놓치고 지나가는 계명들을 떠올려보며, 그 흘려보낸 순간들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노라 고백할 수 있는 기회이었음을 기억해낸다면,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순간들을 회상해본다면 어떤 아쉬움과 죄송함이 마음 한켠에 남아있지 않을까요?

  미사와 모임을 갖기 어려운 가운데 조금은 무료하고 조금은 무심하게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적잖이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드러내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있음을 사소한 계명들을 통해 되짚어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1요한 5,3) 입니다.

  • ?
    아가다 2020.05.17 07:20
    아멘! 감사합니다
  • ?
    Abel 2020.05.17 08:12
    사랑하는 것..
    아멘
  • ?
    보름달 2020.05.17 09:22
    동교민항이 사우나 같더라도 미사를 드릴 수 있었던 때가 좋았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 ?
    26512 2020.05.17 09:27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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