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사제서품을 받으면 교회에서는 은인들을 위한 지향으로 미사3대를 봉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사제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짧지도 쉽지만도 않은 터라 스스로의 기쁨과 만족감이 클 테지만, 자칫 사제가 된다는 것, 사제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교회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마치 ‘내가 노력해서 얻어낸 결실’인양 착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닌가 합니다. 사실 본인이 노력한 것도 많겠지만, 많은 이들이 기도와 도움, 관심과 격려, 사랑과 질책, 가르침과 희생 등에 힘입어 사제가 될 수 있었고 지금 또한 그렇게 사제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비단 사제들만이 아니라, 사람들은 누구라도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고 살아갑니다. 다만 ‘남들도 다 받는 도움과 사랑’이 값진 줄을 모르고, 남들도 다 누리는 도움과 사랑은 마치 자신의 당연한 권리인양 착각함으로써 우리는 자만이나 불평에 쉽게 빠지고, 감사함을 쉽게 잊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감옥)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 5,26)
실제로 우리가 하느님나라를 꿈꾸고 희망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신앙의 상징으로 삼고 자랑스러워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살아 생전에도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또 십자가 위에서조차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가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필요로 하고 구하는 사람들을 배불리시고 치유해 주시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마태오 복음 18장의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서처럼,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탕감해 주는 임금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많은 빚을 탕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무슨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선행을 해야 하는 이유, 복음에서 나오는 율법 곧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도 결국 따지고 보면 그것이 좋은 일, 옳은 일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것, 우리가 이미 그분께로부터 사랑과 자비와 은총을 받아 누렸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억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좋은 일을 하고서도 으시대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베풂과 나눔이 자신의 성공과 안녕을 자랑하는 것처럼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감사함이 결여된 이의 선행은 관심과 연민에서 나오는 능동적인 모습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에게 필요한 정신이 어쩌면 ‘부채의식( 負債意識 )’이 아닌가 합니다.
저희 교구의 한 원로신부님께서는 1960년대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신부님께서 공부하실 무렵에는 사목일선의 모든 여건이 열악했고, 그래서 한국에서 사목하는 신부님의 동료들은 고생을 무척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독일로 유학을 떠나, 방에 편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동료 신부님들에게 빚진 것처럼 미안하게 생각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공부하는 그 생활환경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공부하셨고, 나중에 공부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몇배의 노력으로 그 빚을 갚을 것이라고 다짐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귀국하여서는 일평생을 신학생들의 교육과 양성에 헌신하셨고, 학자이며 선생님으로서의 진정성이 수많은 신부님들의 귀감이 되어, 교구를 초월한 많은 제자 신부님들로부터 여전히 존경받는 분으로서 살아오셨습니다.
그 선배신부님께서 유학생활 동안 동료들과 교구에 빚을 지고 있다고 하셨던 그 ‘부채의식’이 우리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지켜야 할 계명들은 결국 예수님의 자비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행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무언가 베풀고 살아간다는 자부심과 오만함이 아니라, 갚아나가야 할 빚, 나를 이미 위기와 수렁에서 지켜주고 구해준 빚을 하느님과 교회와 이웃들에게 지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보았으면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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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게시판을 열며 : 인사드립니다. 2 | 2020.02.08 |
지금 은혜로운 시간을 주심에 또 감사합니다
두고두고 빚을 갚아가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