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회개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잠시 생각해봅니다.
복음에 나오듯이 큰 아들은 처음에는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하였으나 나중에 생각을 바꾸고서 아버지의 뜻을 행합니다. 그에 반해 작은 아들은 일하러 가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밭에 나가 일하는 것을 꺼리는 속마음은 두 아들이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꺼리는 마음’은 자신의 입장,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큰 아들은 ‘밭에 나가 일하기 싫다’는 자신의 생각, 자신을 위한 생각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을 가졌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작은 아들은 애초에 ‘일하러 가겠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일관되게 아버지의 마음이나 뜻을 완전히 외면’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볼 수 있겠지요. 어쩌면 밭에 나가서 일하는가의 여부보다 자신의 선택과 대답을 받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이 아들로서의 도리에 어울리는 자세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간략한 비유 이야기 뒤에 다음과 같이 물으십니다 :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마태 21,31)
성탄을 앞두고 고해성사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고해성사가 편하거나 가벼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해야 할 일’로서만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내게 원하는 것’에 마음을 두기 위한 일이라면 그 요청을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과 방법으로 받아들이는 ‘큰 아들의 시간’이 우리에게도 필요할 듯 합니다.
또한 그런 마음으로 우리 자신과 이웃의 삶을 돌아볼 줄 아는 것이 지금 우리가 요청받는 회개의 정신 가운데 한 가지 기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