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프랑스 출신 예수회 수도자이며 철학자, 고생물학자, 고고학자, 지질학자로 유명한 ‘Pierre Teilhard de Chardin(삐에르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세상의 종말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수렴(Recapitulatio)’라고 표현합니다. 세상의 시작이 하느님 한분에서 시작된 것처럼, 세상종말도 하느님 한분에로 모든 것이 모아들여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으로 인류역사는 계속 흘러가고 있다고 합니다.
과연 역사는 그 목적지, 종착점을 향해 계속 나아갑니다. 선박이나 비행기가 운행을 계속할 때에 과연 지금 어디쯤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못알아채는 수도 있지만 그 행선지가 분명하게 정해져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면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생애, 혹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역사의 행선지는 과연 어디입니까? 우리는 그 자리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독서 말씀에서 다니엘과 동료들은 머나먼 바빌론 땅에 유배를 가서 살았지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느님을 충실히 믿어서 그분의 축복속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지혜와 축복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이들이 모함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할 만큼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소에 해오던 것처럼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실 것이라는 확신을 잃지 않습니다. 과연 그들의 믿음대로 하느님께서 그들을 죽음의 수렁에서 구해주십니다.
이것은 물론 묵시문학적인 표현입니다만,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매달리고 의지하는 이들을 반드시 구원하러 오시며, 그 희망을 잃지 않고 역사의 종착점을 향해 매진하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반드시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되리라는 확신의 표현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세상종말을 이야기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사실 중요한 것은 그런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과 그 삶들이 이어져온 역사가 도달해야 할 종착점은 바로 세상에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많은 이들이 부활의 영광을 얻게 되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오늘 예수님의 말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날이 찾아와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종말과 심판'의 사건을 두고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노력할 것도 오직 이 사실 한가지뿐입니다. ‘알파요 오메가’이신 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리라는 희망으로 그분께서 오실 때를 준비하며 산다면, 다니엘과 동료들 그리고 죽었던 예수를 살려주신 하느님께서 우리도 그렇게 살려주시리라는 확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