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에 인권운동단체나 구호기구 및 사회복지단체 등이 기부금을 본래의 기부목적과 다르게 사용하는 등의 이유로 사회의 지탄을 받는 일들을 언론을 통해 목격하게 되곤 합니다. 우리 본당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나 기부(寄附)받은 금전이나 물품을 사용할 때에는 기부목적에 맞게끔 사용한다는 신뢰가 필수적입니다. 비록 사회사업에 쓰일 재원을 운용하는 것은 활동단체이지만, 그 재원을 기부받았다고 해서 사회단체 임의대로 사용할 수 있는 권한까지 받았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비단 금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권한의 범주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생활의 다방면에 존재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창조주이시며 모든 생명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권한을 믿는 우리들에게 있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처럼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리는’(마르 12,17) 것도 때로는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도 이런 문제를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역사만 보아도, 유교문화권의 ‘제사(祭事)’를 우상숭배로 간주했던 보편교회의 인식과 몰이해로 인하여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박해를 견디며 목숨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보편교회의 역사 안에서도 신대륙의 원주민 문화와 종교적 관습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적대적 행위로 보았을 때에, 지배세력의 우월감과 타 문화에 대한 몰이해가 더하여져서 많은 학살과 핍박이 가해지기도 했습니다.
교회법 안에서 많은 법리와 원칙은 ‘자연법’에서 기인합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정해두신 질서와 섭리 안에서 하느님의 뜻과 능력을 찾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권한과 질서 가운데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 모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권한을 부인하며 인간이나 집단이 자신의 권한을 강제하는 것은 하느님의 것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욕심과 강권(强勸)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본래부터 하느님의 것이어야 할 것을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창조질서에 위배되지 않으며 하느님께서 세상의 관리자인 인류에게 맡기신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그 요구와 명령을 따른다는 것이 하느님을 거부하거나 그분의 권한을 침탈(侵奪)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황제의 것, 황제의 권한처럼 누군가의 권한을 인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사회의 공동이익,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한 선택, 보편적인 인류애에 기반하는 요구 등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 각자, 더 나아가 교회의 지도자들 혹은 사회의 지도자들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권한과 뜻을 잘 헤아릴 수 있다면 ‘황제의 것’과 ‘하느님의 것’을 잘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식견과 지혜, 올바른 양심이 더욱 필요함을 생각하며 기도 중에 은총을 청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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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황제다운 황제로 당당할 수 있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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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