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24-25장의 말씀은 ‘종말의 심판에 관한 설교’라고 불리는 담화인데, 그 가운데 일부를 복음말씀으로 듣습니다.
‘깨어 있어라’(24,42)는 말씀은 복음의 맥락을 따라가보면 곧 ‘준비하고 있어라’(44절)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준비(準備)라는 것은 주인이 돌아올 순간에 제대로 갖추어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주인이 ……내주게 하였으면’(45절) 언제일지 모르지만 주인이 귀환활 때까지 “그렇게 일하고 있는”(46절) 것이 깨어있는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실한 자세를 견지하기 위해 전제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왜 주인이 돌아올 때를 의식해야 하는가? 자신을 ‘종’이라고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언제 돌아올지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어떤 사명을 부여한 주인의 권리와 방침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있을 때에 성실할 수 있습니다.
둘째, 위임(委任)받은 권한을 잘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못된 종은 자신의 일에 성실하지 않으면서 ‘동료들을 때리기 시작하고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신다’(49절)고 합니다. 동료들을 관리하거나 책임지고, 집안에 사람들을 들이거나 그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등에 있어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죠.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여 양육에 힘을 쏟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에서 나오는 덕목일지 모르겠으나,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하느님께서 혼인의 질서와 가정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도록 섭리하셨기 때문에 지켜야 할 당연지사(當然之事)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 자신의 사랑에 근거를 두고 정당성과 당위성을 논하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신적(神的) 차원의 사랑과 계명이 같은 행위의 근거가 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의 차이는 우리 신앙인들을 더욱 더 하느님의 초월적 사랑을 닮은 사람으로 변모시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정하시고 내게 수행하도록 원하시는 바를 묵묵히 지켜낸다는 것, 그 성실함 안에서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자라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인이 돌아와 인정해주고 상을 내리는 것을 더 기뻐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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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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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 인지상정, 인륜이기보다 높으신 하느님 사랑 실천으로
늘 먼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