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라진아, 너는 화를 입으리라. 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리라. 가파르나움아 네가 하늘에 오를 성싶으냐?”
오늘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코라진, 베싸이다, 가파르나움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회당이 도시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 도시들은 매우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지식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했음을 알아볼 수 있음에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반발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코라진, 베싸이다, 가파르나움이 화를 입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들려오는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더 많이 알면 알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하느님이 누구이시고,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기에, 우리는 그만큼 더 잘 살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좀 더 가까이에서 귀기울이며 듣고,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가장 신비로운 기적인 성체성사를 자주 접하는 여러분이야말로 하느님을 잘 알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할 분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죽더라도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또 그 생명을 갈구한다 하면서 지금 나에게 주어지는 눈앞의 결과가 모든 것인양 여긴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더욱 많이 알기에 더욱 그분의 신비를 알아보고 받아들일 책임과 소명을 소홀히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다고 하여 주님께 책망을 듣고, ‘더 많이 맡은 이로서 더 많은 것을 내어놓지 못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행동주의는 아닙니다. 행동이 모든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신비를 알고 받아들이고 찾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믿고, 받아들이고, 찾는 그만큼 더욱더 합당하고 충실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하느님을 아는 것으로 그치기 위해서라거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하느님을 닮고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일어났다면, 그들은 벌써 회개했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는 하루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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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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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뜻 앞에 완고하지 않도록...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