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철학적이라고 할 이 짧은 질문의 해답을 얻고자 무수히 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또 각종 참고할 만한 연구자료를 내어놓지만 한마디로 정의내리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삶에는 ‘곡절과 사연’이 많기 때문입니다. ‘핑계없는 무덤 없다’고 했던가요, 정도의 차이가 크기도 하지만 삶이 그리 행복하거나 순탄하기만 한 것은 분명 아닙니다.
비록 ‘노력을 기울이는 데 비하면 삶이 보람되다 느끼는 순간은 짧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들 대부분은 나름 열심히 살아보려 합니다. 삶이 비록 팍팍할지라도, 혹은 지금 크게 아쉬운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 인간은 ‘의미있는 것’을 찾고자 하는 존재임에는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의미있는 것, 보람된 것, 내가 살아있음이 가치있게 느껴지는 것을 추구한다면서도, 우리는 때때로 가치있는 것을 찾았을 때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를 주저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신앙고백도 어찌보면 하느님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깨달았다는 표시인데, 이런 것도 망설일 때가 있듯이 말입니다. 하느님이 계시고 그분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주저없이 그것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회개의 한 단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오늘 복음말씀의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떠올려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물을 길으러 나온 때는 ‘정오 무렵(요한 4,6)’이었다고 합니다. 근동 지방에서는 대체로 햇빛이 가장 강렬한 정오 무렵에는 너무나 뜨겁고 건조하기에 가급적 외출을 삼갑니다. 그런데 여인은 하필 정오 무렵 물을 길으러 우물가로 나왔습니다. 아마도 여인은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이스라엘 아낙네들은 한풀 더위가 꺾인 저녁 무렵 우물가로 모여 들었고, 거기서 뒷담화를 포함한 갖은 이야기가 오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이 정오에 물을 길으러 나온 것은 그들의 눈초리와 입방아를 피하기 위해서였을 듯 합니다. 복음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그녀는 사실 다섯 번이나 남편을 교체했던 사연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다섯 번이나 남편이 바뀌었다는 평범하지 않은 사실을 통해 그의 삶에 곡절이 많았고, 책임소재를 가리기를 떠나 이 여인 또한 순탄치 못한 혼인생활등으로 인한 상처가 깊은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욕정 때문이든 현실적 조건 때문이든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것에 대한 허전함이 있고, 그것을 채워보고자 여러 차례 시도했던 삶이 엿보입니다. 그럼에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았던 듯 합니다.
그런데 은혜롭게도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일대일로 만납니다. 자비하신 예수님과 ‘참 만남’, ‘일생일대의 은혜로운 만남’을 통해 여인은 서서히 자신이 처한 비참한 실상을 파악해 나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채울 수 없는 갈망을 채워주실 분이 바로 자기 앞에 앉아 계신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선생님이야말로 제 평생의 갈증을 채워주실 분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인생 역전은 그냥 주어진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마음은 새 삶을 향한 절박함, 간절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자비와 능력만을 신뢰하며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외친 것입니다 :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요한 4,15)
여인의 모습에서 우리가 회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지도 모를 두 가지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무미건조한 내 삶에 생기를 더해주실 하느님의 초대를 받았음에도 그 은총의 샘물을 달라고 청하기를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모습입니다. 자그마한 계기가 있어도 결심에 이르지 못하고 망설이다 하느님을 가까이 하는 삶에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찾거나 그분께 돌아오고자 하는 이들이 비록 얼마간 신앙생활을 쉬었거나 하느님을 모를 때에 몹시 방황했다 할지라도 지금 하느님을 찾는 진심어린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다 헤아리지 못하는 그들 삶 속에 ‘우여곡절이 있을 것임’을 먼저 헤아리는 마음을 기억합시다. 이 마음이 부족하여 어떤 이들의 간절함을 가벼이 여김으로써 내가 경험한 모습으로만 그 사람을 재단하는 잘못이 그들을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에서 멀어지게 할 수 있음도 다시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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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삶 속에 우여곡절을 먼저 볼 수 있는
하느님의 자비와 지혜의 눈을 청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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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 핀 무명초가 아름답다 했나요.
지금 주님이 더더욱 간절함은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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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주님을 잊은채 살아가는 모든 쉬는 교우들이 주님께 은총의 샘물을 청하기를 간절히 기도드리며...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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