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시기의 셋째 주일인 오늘, 본당과 가정마다 대림환에는 장미색 초에 불이 켜질 것입니다. 장미색이 뜻하는 바는 ‘기쁨’인데요. 구세주의 처음 오심과 언젠가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회개의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이번 주간은 특별히 기쁨을 생각하며 지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구체적인 우리 삶 속에서 실현하고자 교회는 해마다 이날을 자선 주일로 정하고 나눔의 삶을 실천할 것을 권고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자선이란 ‘없는 이에게 필요한 것을 대가 없이 주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대로 ‘자비’를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듣고서 군중이 던지던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물음에 대하여 요한은 답을 일러줍니다. 그 부류에 따라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해야 할 바와 세리들에게 요구되는 바, 그리고 군사들에게 요구되는 바를 각각 일러주었습니다. 공통되는 핵심은 ‘나누라.’는 것인데요. 그러기 위해 ‘나눔에 해가 되는 행위를 멈추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눔은 물질적으로 누군가를 돕는 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러한 나눔도 결코 평가절하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언젠가 예수님께서 사소한 것까지 십일조를 바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의로움과 자비라고 하시던 말씀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마태 23,23 참조).
부쩍 추워진 날씨에 굶주리고 헐벗은 이웃들, 병으로 고통받는 이들, 자유가 억압된 이들이 있음을 생각하는 것. 그들의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마음 쓰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분주하게 어떤 곳을 방문하고 어떤 것을 가져다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부터 챙겨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헌금함에 돈을 넣는 사람들을 보고 계실 적에 저마다 부유한 가운데에서 얼마씩을 넣던 부자의 헌금보다는 가난한 과부의 렙톤 두 닢에 주목하시던 것을 떠올려 봅니다(마르 12,41-44). 별것 아닌 듯한 나의 호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희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그것이 주님께는 큰 기쁨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거기에 희망을 걸고 오늘도, 내일도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나눔의 기쁨에 미리 젖어 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가 그러한 기쁨을 맛보는 가운데 당신의 오심을 기다리기를 바라시지 않을까요?
대건고등학교 교목실장 장경식(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