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중순 늦여름의 무더위만큼이나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오늘 우리가 4주째 듣고 있는 요한복음 6장의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지난 연중 제17주일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에 매료된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 갈릴래아를 샅샅이 뒤졌고, 마침내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나 당신께 열광하는 군중에게 예수님께서 대뜸 건네신 말씀은 그리 친절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6,26) 예수님은 유다인들이 사랑하는 모세를 언급하며 그들의 심기를 건드립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 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6,3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으로 소개하며 당신의 신원을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유다인들에게 혼란을 줍니다.(6,52 참조) 급기야는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메시아 상(像)에 예수님을 맞춰 넣으려 했습니다. 그들이 원했던 구세주의 모습은 광야에서 만나를 받은 모세만큼만입니다. 그 이상은 원하지 않았죠. 그들이 원했던 구세주는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 친척들 모두 잘 알고 있는 어느 동네의 아무개가 아니라 하늘에서 이 땅에 강림한 존재입니다. 그들은 자기 살과 피를 먹으라고 내어주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메시아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자기들이 원한
메시아가 아닌 것을 확인한 군중은 그대로 예수님을 떠나 버립니다.
오늘 독서 말씀에서 지혜는 “똑똑한 사람들”이 아닌 “어리석은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지혜는 처음부터 일곱 기둥을 손수 깎아 집을 짓고 짐승을 잡아 음식을 차리며 술과 향료를 빚어 상을 차리고 여종들을 보내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똑똑한 이들은 초대해 준 이에게 답례를 해줄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혜가 차려준 음식을 평가하며 “이건 좀 짜다, 이건 맵다, 이건 달다” 하고 말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어리석은 이들은 답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지혜가 차려준 음식을 순수하게 맛볼 따름입니다.
첫째가 꼴찌 되고 꼴찌가 첫째되는 것처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 걸림돌이고 다른 민족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1코린 1,23 참조) 성체성사의 신비는 어쩌면 우리에게 어리석음을 강요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당신의 살과 피를 반드시 우리에게 내어주셔야 했는지, 왜 당신의 죽음이 아니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는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심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단순한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오영재 요셉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