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의 하루는 다른 곳 보다 일찍 시작해 늦게 끝납니다. 부대 특성상 대원보다 간부가 더 많은 이 부대는 유독 그러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라는 걸 잘 알기에 군인들은 자신의 시간을 챙기기보다 주어진 업무에 더 열중합니다. 자신에게 부여된 권한의 소중함을 알기에 권한에 수반되는 의무를 묵묵히 감내하는 그들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복음의 비유에 등장하는 소작인들은 권한만 취하고 의무는 잊은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포도밭을 관리할 권한을 밭 임자에게 받았으나, 소출을 그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의무는 잊은 것입니다. 의무를 잊은 이들은 단순한 태만을 넘어 더 큰 비극을 불러옵니다. 의무를 다하라고 재촉하는 밭 임자의 종들을 죽이고 마지막에는 밭 임자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까지 죽이지요. 권한 수여자의 대행자를 죽인다는 것은 자신의 권한을 스스로 버림을 뜻합니다. 의무를 잊음이 권한을 버림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의무의 수행은 권한이 어디에서 왔는지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의무를 수행할 때, 주어진 권한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의무를 저버릴 때, 권한의 내용은 사라지고 권한의 귀함도 잊게 되는 것입니다. 권한의 귀함을 느낄 때, 무겁게만 느껴지는 의무를 해나갈 힘을 얻습니다. 의무와 권한. 권한과 의무가 이렇게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지요.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며 사는 것, 손해이지만 신자이기 때문에 선택하는 자기희생 외에도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의무로 부여되었지요. 이러한 의무를 매일 매 순간 지키며 사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의무를 다할 때, 신자로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권한의 소중함을 매일 인식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늘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 우리의 의무는 가벼워질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의무를 다할 힘을 그리스도께 청하며 주어진 권한의 소중함도 느끼는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주어진 권한의 소중함을 느끼며 지금도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시길 청합니다.
군종 | 박동진 안드레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