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넛지(nudge)’라는 용어를 들어 보셨나요? ‘옆구리를 슬쩍 찌르다.’라는 뜻에서 나온 행동경제학 용어입니다. 어떤 사람의 올바른 선택을 위해 드러나지 않게 개입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자신과 사회에 이득이 되는 선택일지라도 강요보다는 자신의 자발적 행동이라 여길 때, 자기 효능감과 적극성이 더 발휘된다는 심리를 응용한 실천적 개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 이유는 클레오파스가 예수님께 전한 말에서 추론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가 희망한 구세주는 로마로부터 이스라엘을 독립시킬 강한 지도자로 예수님은 그러한 구세주와는 멀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두 제자에게 의외의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행인인 척 다가가 대화의 주제를 물으시며 자연스럽게 동행하셨고, 당신 죽음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해가 저물도록 성경으로 설명해 주십니다. 엠마오에 도착해서는 두 제자가 붙잡으면 함께하실 생각이셨으면서도 갈 길이 있는 듯 행동하시고, 식탁에 앉아 조용히 빵을 들어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들에게 나누어 주십니다.
교우 여러분, 긴 시간을 두 제자와 함께 계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활한 당신을 만나려는 간절함도 보이지 않는 두 제자에게 무엇을 원하셨던 것일까요? 그 해답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본 두 제자의 이후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둘은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주도적으로 증언합니다. 이제 더 이상 구세주의 부활은 전해 들은 이야기가 아닌 그들이 체험한, 본인들이 주인공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요약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당신을 알아볼 때까지 끝까지 가르쳐 주셨다는 것과 그 두 사람이 구세주 부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오늘 복음은 우리 역시 그 주인공으로 초대되었다는 사실과 그러한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크고 특별한 노력이 아닌 예수님 부활에 관한 단순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 이후, 오늘 부활 3주가 되기까지 나의 관심은 주로 어디를 향하고 있던가요?
성의여자고등학교 교목실장 | 박창영 레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