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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던 사람을 보게 하는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하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기적을 바라보는 눈이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라는 자가 안식일에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었기 때문에 유대교 율법을 지켰는가 안 지켰는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복음은 하나의 사건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요즘 말로 바라보는프레임이 다르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또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오늘 복음에 나온 눈먼 사람이 진정으로 눈을 뜬 사람이라 할 수 있고, 바리사이들이 눈먼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막 눈을 뜬 맹인은 직접 두 눈으로 구세주를 보았고, 바리사이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율법을 어긴 죄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사이의 아들들 가운데 장차 유다의 임금이 될 사람이 있으니 가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성별하라고 보내십니다. 사무엘은 풍채 좋은 엘리압을 보자마자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하느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결국 사무엘은 눈이 열려서 막내 다윗을 알아보고 주님의 뜻대로 그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으로 세우게 됩니다. 이는 사무엘이 주님의 뜻에 따라 육신의 눈이 아니라 영혼의 눈을 뜨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영혼의 눈을 뜨기 위해서입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야 우리 삶에서 진정 한 보물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아집과 편견에만 사로잡히면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내 삶 안에서 주님의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모든 일에서 주님 뜻에 맞갖은 모습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감사드리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영적인 눈을 뜰 수 있도록 빛이신 주님께 간절히 청해야겠습니다.

 

 

 

선목학원 사무차장 | 예진광 이레네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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