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 영광, 사람들에게 평화!”
예수님의 성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추운 겨울, 양떼를 지키던 가난한 목동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전해 준 기쁜 소식을 저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11절)
이 기쁨은 교회를 통해 이천 년을 넘게 전해진 신앙의 보화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셨으며,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은 놀라운 구원 신비의 시작입니다. 구세주께서 위대한 왕이나 권력자의 모습이 아니라, 가난한 시골 가정에서 나약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12절) 구세주 예수님을 알아보는 표징이 포대기에 싸여 마구간의 구유에 누워 있는 보잘것없는 아기의 모습이라는 천사의 말입니다.
교구의 모든 사제들에게 성탄의 기쁨을 전합니다.
사제는 말과 행동, 그리고 자신의 온 존재로 예수님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니 사제들의 삶이 먼저 기쁨에 차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제는 매일 미사를 통해 하느님 말씀의 씨앗을 교우들의 마음 밭에 뿌리고 가꿀 뿐만 아니라 성체성사를 통해서 교우들이 주님과 하나 되도록 돕습니다. 그러기에 사제의 삶은 주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매일의 복음 말씀을 마음에 새겨 자신이 먼저 싹을 틔워야 할 것이며, 성찬례를 통해 자신이 먼저 주님과 일치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제들은 가장 나약한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신 구세주를 본받아,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하느님께 의지하는 겸손한 어린 아이 같아야 합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본받아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 삶이 가난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가난한 이들에게 가난한 모습으로 오신 주님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내 삶이 겸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가장 낮은 모습을 취하신 구세주를 본받으라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내 삶이 기쁨으로 충만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의 성탄을 맞아 신부님들 한 분 한 분이 천사의 인도로 성탄을 목격한 목동들처럼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교구의 모든 수도자들에게 성탄의 기쁨을 전합니다.
수도자들은 지상에서 하늘나라의 신비를 미리 보여 주는 존재입니다. 수도생활은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삶을 통해 주님을 향한 완덕에로 나아가려고 노력하는 고귀한 삶입니다. 하지만 수도자들의 첫째가는 덕목은 기쁨일 것입니다. 수도생활은 고행이 아니라 주님을 향한 기쁜 여정이어야 합니다. 그러니 아기 예수님의 성탄은 수도자들에게 먼저 기쁜 소식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기뻐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의 기쁜 삶을 보고 하늘나라의 기쁨을 미리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수도자들의 삶은 지상에서 하늘나라의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갈수록 물질만능주의에 빠지고 신앙을 멀리 하더라도, 성소자가 줄어들고 수도생활에 걸림돌이 많더라도 여러분의 삶은 흔들리지 않고 기쁘게 주님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구세주의 성탄을 여러분과 함께 기뻐하며 기도드립니다.
교구의 모든 평신도들에게 성탄의 기쁨을 전합니다.
주님 성탄을 맞아 평신도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한국 교회는 평신도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신도들은 세상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세상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직접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선교의 최전선인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먼저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말씀을 새겨들으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기쁨 가운데에서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요한 13,35)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기쁨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50주년을 기념하여 내년 평신도 주일까지 “평신도 희년”을 선포하고 전대사를 수여합니다. “희년”(禧年)은 복된 해, 기쁨의 해, 거룩한 해입니다. 삶에서 기쁨이 우러나는 한 해가 되어야겠습니다. 세상살이는 고단하고 세상 안에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평신도 여러분의 삶은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습니다. 춥고 어두운 겨울밤에 아기 예수님께서 따스하고 밝은 빛으로 오신 것처럼, 여러분 마음 안에 주님께서 빛으로 오시어 앞길을 환하게 비춰 주실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의 성탄을 축하드립니다.
2017년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에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조 환 길(타대오) 대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