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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부활은 마지막까지도 믿지 못하는 이들의 믿음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부활은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와 같이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밝혀 주는 것이고 그만큼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자비를 밝혀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부활은 그러한 하느님의 자비를 입고 자비에 참여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 입기

부활하신 예수님은 모든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토마스를 위해서 재차 나타나셨습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확실히 믿음의 자비를 입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 숨어있던 제자들은 비로소 기쁨과 평화와 믿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활은 제자들에게예수님께서는 늘 자신들에게 주님이셨음을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자신들을 부르실 때나, 자리다툼을 하던 때나, 배반하고 떠나갔을 때나, 언제나 자신들을 위해서 같은 주님으로서 자비로운 하느님으로 계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의 기쁨과 평화와 믿음은 이제 비로소 하느님의 애끓는 자비의 마음으로까지 가닿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오늘의 부활은 어제의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자비임을 돌아보게 합니다. 숨 쉬고 움직이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입은 것임을 보게 합니다. 우리는 결코 가난한 사람이 아닌 것 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참여하기

부활은 우리의 믿음을 돌보는 일입니다. 곧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의 모든 생명을 돌보는 일입니다. 자비를 입은 우리도 생명을 돌보는 책임과 힘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위험에 놓은 생명들이 많습니다. 전쟁의 위험, 안전의 위험, 코로나의 위험에 놓인 사람들,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 등 우리 손길이 닿는 곳에 자비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음하는 온갖 피조물도 우리가 돌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비는 먼저 아픔과 슬픔과 그들의 신음에 공감하는 것이겠지요. 예수님께서도 믿지 못하는 토마스 사도의 마음을 들으셨습니다. 우리도 내 생각을 비우고 먼저 아파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귀를 기울여 들어봅시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자비는 슬픔과 사랑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아픔을 듣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입고, 모든 생명을 돌보는 하느님의 자비에 잘 참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월명성모의집 원장 | 손현기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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