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고민이 깊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원수를 사랑하라.”(루카 6, 27. 35) 하시며, 나를 미워하는 사람, 나를 저주하는 사람, 나를 학대하는 사람, 내 뺨을 때리는 사람, 내 겉옷을 가져가는 사람을 사랑하라 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을 하라 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24-25)는 옛 세상의 법이 그립고 그런 세상 속에 머물고 싶은 것이 은밀한 속마음입니다. 그래서인지 제1독서는 원수 앞에서 갈등하는 다윗 일행의 모습을 전하고, 제2독서는 우리가 흙으로 된 사람의 모습을 지녔듯이 하늘에 속한 그분의 모습도 지니게 될 것임을 전하며, 망각하고 있었던 희망 속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당신의 제자들 ― 특별히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루카 6,27) ― 에게 하십니다. 그것은 군중처럼 당신 주변에 머물며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자신을 넘어서고 욕망을 거슬러야 가능한 것으로, 새 세상을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징이 됩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고 천국을 바라며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느님을 닮으려는 이들에게는 가능한 사랑이고,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능한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을 닮아가며 천국을 보여 주려는 이들에게는 가능한 사랑이 됩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 천주교인들은 세상과 달라지며, 예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경청하는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을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들에게 해 주는 것’(루카 6, 31 참조)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잘 해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주라’(루카 6, 35 참조)고 하시며, 그로 인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루카 6, 35)이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전한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루카 1, 32)이라는 예언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과 같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심판하지 맙시다. 단죄하지 맙시다. 용서합시다. 그리고 줍시다. 이 사랑은 우리가 세상이 아닌 하느님을 믿는다는 증거이며, 벌써 시작된 하느님 나라가 존재한다는 징표가 됩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 38)라는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도본당 주임 | 황하철 안드레아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