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라는 것은 물체의 차고 뜨거운 정도를 기준을 정해 수치로 나타낸 것을 말합니다. 이는 셀시우스라는 서양의 천문학자가 만들어 놓은 기준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이 끓는 온도는 100°C(celsius)라고 하고 얼음이 어는 온도를 0°C라고 합니다. 수많은 온도들이 존재하는데, 우주의 온도는 마이너스 270°C, 태양의 온도는 6000°C, 지구의 평균온도는 14,5°C, 인간의 온도는 36.5°C입니다. 또 신맛의 온도는 27°C, 매운맛은 60°C, 짠맛은 37°C, 아이스크림은 영하 14°C, 스테이크는 69°C, 커피는 70°C에서 가장 맛이 좋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온도계로만 잴 수 있는 온도들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온도계로 측정 불가능한 온도들도 많이 있습니다. 긴 밤 내내 열 오른 아이의 이마를 짚어주던 어머님 손의 온도, 몇 번을 망설이다 처음으로 수줍게 잡았던 사랑하는 사람의 온도, 10시간이 넘는 진통 끝에 가슴에 안은 내 아이의 온도, 임종의 순간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느낀 부모님 손의 온도, 기쁜 일에 웃고 슬픈 일에 울 때 볼을 적시며 흐르던 눈물의 온도 등 숫자로 표시될 수 없는 온도들이 있습니다.
대림 제3주일을 맞으면서 성큼 다가온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준비하며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2021년의 끝자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지금 여러분의 온도는 몇 도입니까? 지난 시간 우리는 얼마나 우리 인생에 걸맞은 온도로 살아오셨습니까? 아니 얼마나 뜨겁게 살아오셨습니까?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사랑의 계명을 지키며 뜨겁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뜨겁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가족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그리고 이웃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말입니다. 대림 제3주일은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면서, 아울러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뜨거웠던가를 돌아보는 ‘자선 주일’이기도 합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마태 11,7)’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이 말을 오늘 우리게 적용하면 ‘너희는 무엇을 보러 성당에 나갔더냐?’라는 말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당신 사랑의 실천을 위해 이 땅에 강생하신 예수님을 보러 옵니다. 연약하고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희생해 우리를 구원할 사랑의 왕의 모습을 보러 옵니다. 그러니 우리의 모습도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도현 시인이 쓴 ‘연탄재’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지나온 한 해에서 우리 인생의 온도는 몇 도였습니까? 안도현 시인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뜨거운 삶이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국우본당 주임 | 성진우 아뽈리나리스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