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가 깨어있음을 상징한다는 것은 산속에 있는 사찰의 풍경을 보면서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물론 깨어있음은 단순히 눈을 뜨고 있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끊임없이 자신의 틀을 깨고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대 그리스 사상가인 헤라클레이토스는 “그 누구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매일매일 살아가는 시간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시간은 방금 전의 시간이 아닌, 매 순간 새롭게 솟아 나오고 있는 시간입니다. 매 순간을 인식하고 현재에만 존재할 수 있음을, 그 현재는 바로 선물임을 인식하는 것이 깨어있음이 아닐까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전례력으로 대림 시기를 한 해의 시작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곧 전례력을 통해 또다시 새로움을 인식하고, 시간의 거룩함을 인식하도록 늘 깨어있으라고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깨어있어야 하는 목적지는 깨달음입니다. 성경 곳곳에서 깨달음을 촉구하는 많은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듣고 깨달으라고 하십니다(마태 24,32; 마르 13,28 참조). 맑은 정신으로 고요히 깨어있다 보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지금 주변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이 하느님의 섭리 임을, 좋은 일뿐 아니라 거부하고 싶은 일까지도 모든 것이 작용하여 선을 이루는 일임을 말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 일어나는 표징들, 민족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바다와 거센 파도들, 하늘의 세력들(복음), 이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이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그러나 알이 새가 되어 진짜 세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었던 껍데기를 깨야 합니다.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된(제2독서) 내적 인간이 되기 위해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물러진”(복음) 외적인 인간을 깨고 나와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깨고 나올 수 있을 때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주인으로 내 안에 계심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늘 깨어 기도함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매 순간 외적 인간의 틀을 깨뜨리는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니 기다림의 시기는 틀을 깨뜨리고 나와 배려와 존중, 이해와 나눔을 살아가도록 하는 희망을 가르쳐 줍니다.
교구 가정복음화국장 | 박상용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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