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우리 시대에 오신다면 방탄소년단(BTS)처럼, 오스카상을 받은 기생충 영화처럼, 유느님(방송인 유재석)처럼 오실까요? 사람들은 그것을 원할지도 모르지만, 예수님께서는 새벽을 여는 청소부처럼, 오지를 마다하지 않는 집배원처럼, 부모가 떠나고 혼자인 손주를 위해 굽은 몸으로 밥을 짓는 할머니처럼 그렇게 오시지 않을까요?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고단한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뵐 기회가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장 낮은 곳에서 자신을 바라볼 때 예수님을 뵙기가 더 쉽지 않을까요?
어쩌면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걷는 것이 불편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의 길’을 고집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주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그리워하는 것은 그 길이 사람이 가야 할 본래의 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 세상에 있는 길들은 자신을 조금 가려야 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특히 한국 문화에 그런 점이 짙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도 오히려 그런 모습에 예수님께서는 사람 곁에 계십니다. 그런 사람을 기다렸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십자가의 길’을 걷기를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길’도 ‘세상의 길’처럼 자신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년에도 자신을 가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을 ‘십자가의 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길’은 그런 사람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세상에서는 철이 들면 타인을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가리는 가면을 쓰는 것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 얼굴을 가리는 가면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표정을 타인에게 맞춰 주는, 그런 가면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산본당 주임 김충남 실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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