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으뜸 제자인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충격적인 말씀을 듣습니다. 그래도 나름 스승이신 예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다른 제자들에 비해서 인정도 받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의 생각으로는 백성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은 예수님께서 수난을 받거나 돌아가시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다 이루기 위해서라도 그분의 능력과 인기를 활용해서 왕좌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인간적인 반응인데도,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탄, 장애물, 걸림돌’이라는 지독한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의 세상은 어떻습니까?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사람의 일’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정의의 이름’으로, ‘진리의 이름’으로, ‘평화의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의 이름’으로, ‘자연의 이름’으로, 다양한 ‘이름’으로 옳은 일을 한다지만, 그곳에 ‘하느님의 일’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끊이지 않는 전쟁과 테러,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착취, 자기편이 아닌 것들에 대한 경멸, 이러한 일들을 저지르면서도 어찌나 당당한지. ‘인간의 지혜로 얼마나 위대한 세계를 만들어 놓았는가?’라고 오히려 항변하는 듯합니다. 그러면서도 진짜 ‘하느님의 일’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의 욕심 때문에 지구가 죽어갑니다!’라고 외쳐도 무슨 신통한 대안이라도 있는 것처럼 무감각합니다. ‘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시는데도, 자기 십자가는 버리고 자기 영광만, 이익만 좇아 살아갑니다.
우리 모두는 피조물입니다. 창조주의 메시지를 그 몸에 지니고 사는 피조물입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라는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이제 우리도 우리 뼛속에서부터 꿈틀거리는 창조주 하느님의 음성을 잘 새겨들읍시다. 그래야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탄,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우리 자신이 변화되게 합시다. 그리하여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합시다.’ ‘피조물의 일은 창조주의 일’을 생각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완성되어 갑니다. 창조주의 모습을 닮은 피조물이 누구를 따라가야 하겠습니까? 소리치고 있습니다. 욕심으로 가득 찬 ‘인간의 일’이 아니라 창조주 ‘하느님의 일’에 귀를 기울이라고. 우리 뼛속에 새겨진하느님의 말씀이, 외면당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멸종 위기의 생물들이, 기후변화가, 모든 생태계가 소리치고 있습니다. ‘사람의 일’만 생각하지 말고 ‘하느님의 일’을 더 생각하라고.
산자연중학교장 이영동 치릴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