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근본적인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과 씨를 받아들이는 다양한 환경이 있습니다. 씨를 받아들이는 첫 환경은 길바닥과 새들입니다. 완전한 거부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환경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입니다. 씨앗을 받아들이는 조금의 가능성은 있었지만 뿌리를 내릴 수 없는 환경으로 이 역시 거부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 환경은 가시덤불입니다. 이 환경 역시 단단한 땅처럼 개방하지 않는 모습이요, 자신의 생각으로 무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 번째 환경은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이라는 것은 자신을 활짝 열고 받아들이는 선택으로 풍성한 결과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묵상하며 요한 묵시록(3,20)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복자 슈브리에 신부는 어느 글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 그것은 결국 우리의 문을 두드리시고, 우리 안에서 당신의 일을 완성하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자리를 차지하기 원하시는 예수님에게 자신의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 그 소리에 나는 문을 어느 정도 열고 있는가? 문도 열지 않고 누구냐고 묻고 있는가, 아니면 문을 조금은 열고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문을 활짝 열고 앞에 서 계신 분을 환영하여 집으로 맞아들이는가?
문을 열지 않는 사람은 씨앗을 받아들이지 않는 땅처럼 씨앗을 뿌리는 사람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문을 반쯤 열고 얼굴을 보되, 안으로 맞아들이지 않는 사람 역시 돌밭이거나 가시덤불처럼 거부하는 모습입니다. 자신이 그 집의 주인으로 고집하면서 자기 외에 아무도 집에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아 그 집과 자기 마음의 지배자로 남아 있는데, 긍정적 결과 즉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문을 활짝 여는 사람은 좋은 땅입니다. 풍성한 결실을 거두게 될 희망의 땅입니다. 문을 두드리는 스승을 집안에 모시고 첫 자리를 내어드리며 기뻐하며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듣고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됩니다. “밭을 가는 사람처럼, 씨 뿌리는 사람처럼 지혜에 다가서서 지혜의 온갖 좋은 열매를 기대하여라. 정녕 지혜를 가꾸는 데는 적은 수고를 들이나 곧 지혜의 소출을 맛보리라.”(집회 6,19) 좋은 땅이 되기 위해서 땅을 갈아엎는 경작은 고생이 따르지만 끈기 있게 가꾸면 투자한 노력에 비하여 더 큰 결실을 맛보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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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톨릭치매센터 원장 정석수 유스티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