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하느님 나라는 혼인 잔치에 잘 비유됩니다. 세상 종말에 예수님은 신랑으로, 그분의 교회인 우리들은 신부로서 혼인 잔치에 초대받습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는 종말론적 혼인 잔치에 대해 알려줍니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혼인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5절) 혼인 잔치는 사랑하는 청춘 남녀가 부부로서 하나가 되는 기쁜 날입니다. 그처럼 종말론적 의미에서 혼인 잔치는 그리스도와 우리 인간이 하나가 되는 기쁨의 날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는 바로 이러한 종말론적인 혼인 잔치의 결합을 예표합니다.
혼인을 축하하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음식을 나누고 춤을 추며 잔치를 벌이는데, 이 흥겨운 잔치는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랑은 포도주를 넉넉히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포도주가 바닥이 난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기쁨과 사랑을 상징하는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느님과의 혼인에는 더 이상 사랑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모님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먼저 알아차리십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곤란하게 될 신혼부부를 염려하는 섬세한 마음으로, 이 사실을 예수님께 알립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하지만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하고 거절하십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거나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을 아들 예수님의 손에 내어 맡기십니다. 성모님께는 예수님께서 포도주가 떨어져 잔치를 망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신혼부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 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영광스러운 때가 오지 않았지만, 영광의 때, 그 기쁨과 충만한 은총을 미리 보여주십니다. 그러니 이 첫 표징은 어디까지나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때’의 예표가 됩니다. 이 영광스러운 예표는 오늘날에도 일어납니다.
날마다 거행되는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천상 혼인 잔치의 신랑으로서 신부인 교회와 함께 혼인 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카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면 미사 때에 이 포도주는 성령의 힘으로 더욱 갚진 포도주인 예수님의 피로 변화됩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내맡기시는 어머니 마리아와 무엇이든지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던 일꾼들은 포도주가 어디에서 났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그리하여 주님의 영광의 때에 그분의 사랑하는 신부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경찰사목 담당 ㅣ 조재근 마르코 신부
2019년 1월 20일 연중 제2주일